[임종건 드라이펜]

1월 13일 치러진 대만의 총통선거에서 민진당(民進黨·DPP)의 뢰청덕(賴淸德:라이칭더)후보가 당선됐다. 전체 유권자 2,100여만 명 중 1,394만 명이 투표해 투표율 71.86%를 기록한 이 선거에서 뢰 후보는 과반에 훨씬 못 미치는 40.1%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국민당(國民黨·KMT) 후우의(候友宜 허우유이)후보가 33.49%, 민중당(民衆黨·TPP) 가문철(柯文哲·고원저) 후보가 26.45%를 득표해 뒤를 이었다. 1996년 직선제가 도입된 이후 국민당과 민진당 양당제로 운영돼 온 대만에서 처음으로 3당 체제가 이루어졌다. 총통이 연임한 적은 있으나 같은 정당으로 3연임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의 국회인 입법원 위원구성이 여소야대인 것도 처음이다. 정원 113명인 입법원에서 여당인 민진당 51석, 국민당이 52석, 민중당 8석으로 여소야대 형국이다. 8석의 민중당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게 됨으로써 정국의 주도권을 쥐게 됐다는 평가이다.

이같은 선거 결과는 대만의 정치가 1949년 국민당이 국공내전에서 패배해 대만으로 옮겨온 후 오랜 국민당의 일당독재 시대와 국민·민진당 간의 양당제를 거쳐 3당제로 진화한 것으로, 대만 정치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뢰청덕(라이칭더) 대만 총통 당선인@사진 연합뉴스
뢰청덕(라이칭더) 대만 총통 당선인@사진 연합뉴스

대만의 선거는 4월의 한국 총선에서 11월의 미국 대선까지 올해 지구촌에서 예정된 여러 중요한 선거의 스타트를 끊는 선거였다. 대만 선거는 유럽의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전쟁으로 세계가 전화에 휩싸여 있는 가운데 대만이 아시아에서 또 하나의 화약고가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으로 인해 과거 어느 선거 때보다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대만해협 사이엔 대만·중국 간의 문제와 미국·중국 간의 문제가 서로 얽혀 1949년 이후 70년 넘게 긴장이 지속되어왔다. 먼저 대·중 사이에는 대만의 독립노선과 중국의 통일노선의 대립이 있고, 미·중 사이에는 아시아 패권쟁탈을 위한 대립이 있다.

‘하나의 중국’ 논리는 중국 공산당 정권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외교정책이다. 대만은 중국영토의 일부이고 반드시 통일돼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 세계의 이목이 쏠린 것도 “대만이 독립을 시도할 경우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중국의 습근평(習近平·시진핑) 주석의 발언 때문이었다.

민진당은 창당이념부터 대만 독립이었고, 뢰 후보가 내건 공약도 같을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대만인들이 뢰 후보를 선택한다면 전쟁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위협하면서, 선거를 앞두고 중국 해군함정과 공군전투기들로 대만의 영해와 영공 쪽으로 발진시키는 무력시위를 수차례 벌여 양안의 긴장을 고조시켰다.

그러나 대만의 여론은 오래전에 바뀌어 있었다. 중국과의 통일을 원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만이 독립하기를 원하지만 중국과 전쟁을 하면서 독립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상당 기간 현상유지가 최선이라는 것이 대만인 90%이상의 여론이다.

민진당도 이같은 대만인들의 독립에 대한 생각을 모를 리 없다. 오히려 대만은 이미 독립된 주권국가이므로 독립선언을 따로 할 필요가 없고, 국제사회에서 주권적 지위를 확대하는 것이 목표라는 입장이다.

총통선거와 같이 실시된 입법원 선거에서 2016년 이전 집권당 시절의 원내 제1당의 지위를 회복한 국민당도 비슷한 생각이다. 본토에서 쫓겨 온 사람들이므로 이들의 통일은 ‘본토회복’이었지만 실현가능성이 희박한 현실을 인정해 오래전에 포기했다. 독립문제에 대해서는 중국의 ‘하나의 중국’ 정책에 동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뢰 후보가 당선되면 금방이라도 대만이 독립을 시도할 것처럼 대응한 것은 엄포용 과잉반응이었다. 그것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던 것이 대만 유권자들이었다. 민진당 후보를 당선시킬 테니, 전쟁을 하려거든 해보라는 얘기이다.

대만인들이 독립문제보다 더 예민하게 주목한 것은 홍콩사태였다. 중국은 홍콩의 민주화운동을 억압해, 하나의 중국이지만 제도는 달리 하는 ‘일국양제’로 운영키로 한 홍콩을 사실상 중국에 예속된 행정청으로 만들었다. 대만인들이 중국과 통일할 경우 대만의 주권보전에 대한 위기감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당은 민진당의 독립노선에 대해 “전쟁의 위험을 높이는 정책”이라며 오히려 중국의 편을 드는 인상을 줌으로써 패배를 자초했다. 중국과의 대화의 필요성은 모든 정당이 인정하는 것이었음에도, 국민당의 주장은 중국에 굴종적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대만 선거는 우리의 4월 총선에도 시사하는 점이 있다. 새해 들어 북한 김정일 국무위원장의 대남 도발의 수위가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전 영토의 ‘평정’ 운운하고 있다. 습근평이 대만을 향해 전쟁불사 운운하는 것과 닮았다.

김정은이 도발을 통해 4월 총선에 개입하려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어떤 형태의 도발이 되건, 습근평의 대만에 대한 협박이 그랬듯이, 김정은의 협박도 남한 유권자에게 통할 리가 없다. 북한에 의한 선거개입 시도는 물론, 북한을 선거에 이용하려는 어떤 시도에도 만반의 대비가 필요하다. 다행히 역대 선거에서 북풍은 시도한 정당에게 역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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