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타기 전 꼭 화장실에 들러야 하는 분은 읽어보세요!’서둘러 전철 승강장으로 향하는데 벽면에 붙은 쪼끄만 광고지 제목이 눈앞을 스친다. 시간이 급해 내용을 읽어보지 못하고 열차에 오른 게 못내 아쉽다. 뻔할 것 같은데도 꽤 궁금증을 유발한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난다.민감성 방광이나 절박뇨 치료 약이거나 의원 광고였을 가능성이 크다. 지나가다 멈춰서서 그것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내 연배 남자일 것이다.그러고 보니 내가 친구들과 가장 쉽게 공감하는 장소가 전철역 아닐까 싶다. 일단 친구들과 함께 이곳에 들어서면 누가 먼저
나이 들어 가면서 어느 날 불쑥 찾아오는 불청객 수가 하나둘 늘어간다. 오래된 고무주머니에서 물이 새듯, 70년 가까이 사용해 온 신체의 여기저기가 잔 고장을 일으키는 것이다.그것이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이라면 좀 낫다. 전혀 뜻하지 않은 곳이 말썽을 부리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기계는 고장 난 부품을 갈아 끼우면 새것처럼 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몸은 그럴 처지가 아니니, 사소한 고장도 사람을 여간 괴롭히는 게 아니다.그러다 보니 친구들 만나 수다 떨다 보면 빠지지 않는 게 있다. 노화되는 육체에 관한 푸념이 그것이다. 세월
동창 모임에서의 일이다. 이제 칠순이 되는 친구가 나를 보며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나이 먹는 게 뭐가 좋다는 거지? 나는 그 말이 도무지 이해가 안 돼….” 언젠가 내가 “나는 나이 먹는 게 너무 좋다”고 했던 데 대한 반박이다.“나이 먹어갈수록 더 행복해지니까 좋은 거지…”서드에이지가 시작되는 60대 초반부터 늘 그렇게 생각했다. 인생에서 가장 좋은 때를 맞았다는 기대가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지난 10년 나의 행복감은 해마다 최고치를 경신하며 상승곡선을 그려왔다.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오래전 어디선가 짤막한 기사 하나를 봤
얼마 전 둘째 아들 결혼식이 있었다. 나에게는 더없이 즐겁고 행복한 날이었다. 51년 전에 내 고등학교 동기들이 만든 합창단 ‘Y-glee’의 축가가 혼례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 돼 감동을 배가했다.결혼식장에서 축가는 대개 신랑이나 신부의 친구가 부른다. 간혹 전문 소리꾼이 초빙되어 축가를 선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20명이 넘는 아빠 친구들이 큰 사랑을 담아 두 사람을 축복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다.축가를 부르기에 앞서 Y-glee를 대표해 김경호 목사가 전한 인사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결혼이란 것은 신랑이 가져온 세계와 신
“만약 네가 젊은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너는 그렇게 하겠니?”등산길을 함께 걷는 친구에게 불쑥 물었다. 나 자신에게 던진 질문이기도 했다.그는 당연히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되돌아가면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한다. 그게 뭐냐 물으니, 동대문 시장에서 옷 장사를 해보고 싶단다. 이유를 묻지는 않았지만, 바람이 소박하다.“너는?” 그가 되묻는다. 나는 지난날이 어떠하든 인생은 한 번으로 족하다는 생각이다. 인생의 고해(苦海)를 두 번이나 건너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런데도 뜬금없이 왜 내게 그런 질문이 떠 올랐을까. 내게도 뭔
나는 나이 먹는 게 좋다. 내가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돼 갈 것으로 기대하기에, 세월이 흐르는 게 즐겁다. 언젠가 내가 육체를 벗을 때, 나는 제법 괜찮은 사람이 돼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산다.삶에 더 많이 감사하고 더 쉽게 행복을 느끼는 게 내게는 큰 축복이다. 나를 버리는 만큼 더 가치 있는 것들로 채워지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인생이 감사하다.고등학교 동창들과 2박3일 가을 여행을 다녀왔다. 애초에 맛있는 남도 음식을 염두에 둔 여행이었다. 여행은 28인승 리무진 버스 3대에 동창들을 나눠 싣고 압구정역 공영주차장을 출발하는